약간만 착한 사람

Beejei
4 min readJun 1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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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3년 체력에서, 멘탈에서, 금전과 관계와 나의 성취에의 욕망을 포함한 모든 곳에서 한계를 느끼고 급격히 고꾸라진 경험에서 약간의 메모를 남겨 본다.

선함은 일반적인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약간씩은 지니고 있는 능력치다. 이런 보편적인 선함은 그 양과 질이 그다지 대단치 않다. 양이 크지 않으니 몇 번 내에 소진되기 마련이고 질이 높지 않으니 선행을 했다고 생각해도 잘 전달되지 않는다. 이런 “약간만 착한 사람”으로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간에 쉽사리 상채기를 내고 쉽게 선함이 벗겨진 모습으로 성을 내며 살아가기 십상이다.

일례로 나는 결혼을 한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무한한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일종의 상호 보증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이라는 착각하기 쉬운 허울의 이면에, 평생을 약속한 동거인이라는 현실이 있다. 물리적으로 가까우면 작은 일들이 작은 일들이 아니게 된다. 물건의 소유, 배치, 생활에서의 규칙, 서로에게 일 떠넘기기 등등이 값이 매겨지기에 하찮지만 감정적으로나 체력적으로 하찮은 일이 아니게 된다.

출산과 육아가 더해지면 어떠한가. 출산 전 8~9개월을 꼬박 고생하고서도 아이가 태어난 후 적어도 10년을 장성할 때 까지, 이 구질구질한 동거인들과의 생활에서 인내하고 또 인내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가족이기 때문에. 결혼의 서약은 그런 것이기 때문에. 상호에 대한 보증이자, 새로운 가족에 대한 보증이기 때문에. 이런 나의 믿음은 계속되는 밤샘과 밀려남에 의해 조금씩 깎여 나가다가 얼마 전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가족 중에 나 혼자구나. 다들 나에게 기댈 생각만 하지 내가 기댈 수 있는 어떠한 준비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이것은 가정에서의 경험이지만 사실 내가 속해 있는 많은 그룹에서 비슷한 일들이 일어난다. 양보하는 만큼, 배려하는 만큼, 사람들은 그 영역을 쉽사리 침범하면서도 어떠한 자신의 영역을 공유하거나 대등한 배려를 고려하지 않으면서, 상호간에 발생하는 가벼운 마찰로부터 약간의 선함을 벗어던지고, 욕망이 가득한 표정으로 으르렁거리기 시작한다.

이런 사실을 깨우친 것은 역설적이게도, 요즘의 그런 사람들 가운데 그렇지 않은 사람을 알게 되어서다. 기존에 높다높다 했던 산들이 더 높은 산을 본 후 그냥 언덕으로 느껴지는 것 처럼, 내가 생각한 것 보다도 더 많은 배려를 하고, 내가 조심하는 것 보다도 더 많은 조심을 하면서도, 그래서 더 자주 상처받으면서도 꿋꿋하게 다시 강한 모습을 되찾는 그런 사람이 있다. 앞서 이야기한 약간만 착한 사람이 아닌 언제든 최고의 선함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나는 이러한 사람을, 나이를 불문하고 “어른"이라고 부른다.

나의 선함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내가 스스로, 나의 부끄러운 행동에서 배워 나아지려고 한 부분도 일부 있겠지만, 옹졸한 나의 선행이 부끄러울 만큼 더 큰 그릇으로 선행을 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 마다 약간씩 나아지려고 한 것 같다. 자신의 노동을 기꺼이 제공하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인생을 모조리 바친 사람들까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미처 닮겠다는 말조차도 할 수 없지만, 그런 사람들이 과거에만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동시대에도 여전히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다시 돌아보고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도록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걸 요즘은 “선한 영향”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 주변인들이 그렇지 못함에 매일 매일 실망의 깊이가 더 커지는 것 같다. 나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면서, 괜시리 마음 속에서 과거의 내가 아닌 한껏 선한 영향력으로 부풀어진 내 모습과 기대치에서 멀어지기만 하는 주변인들을 비교하며 과도한 피해의식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한다. 이것도 어찌 보면 나의 선함의 양과 질의 문제이니 나 역시도 “약간만 착한 사람”일 것이다.

슬슬 종교와 같은, 절대 실망하지 않게 될 무언가에 기대야 하는 시기인가 싶기도 하다. 그렇지 않으면 끝없이 비틀어져가는 괴리에 점점 더 우울감에 빠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만 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훌륭한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성공에 더욱 더 치유를 얻으면서 나의 다음 인생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강력하게 착한 사람”에게 더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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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Beej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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