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예찬

Beejei
3 min readFeb 28, 2020

--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것은 나 아닌 한 사람의 인생을 처음부터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를 닮고 배우자를 닮아, 내가 모르는 나와도 마주하고 내가 모르는 배우자를 발견하기도 한다. 이 미니미는 아마도 독립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는 세상에 나밖에 없고, 나의 곁을 계속 갈망할 것이다. 맛없게 요리를 해줘도 아재 개그를 해줘도 그에게는 난생 처음 겪는 경험이며, 진심을 다해 좋아하고 싫어하고 자지러진다. 처음 몇 번은 “이 꼬마 참 별것 다 가지고 좋아하네” 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깨닫게 된다. 내가 그의 신이고 세상의 전부였던 것 같지만, 사실 어느새 그가 내 신이고 내 인생의 전부가 되었음을. 그로 인해 생각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고, 그로 인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내가 필요한 존재일 수 있음을 느낀다. 아이를 보며 나의 아버지와 마주하고 나의 어린 시절과 마주한다. 육아란 나에게 그런 것이다.

그가 처음 배운 단어는 “아빠”이다. 이 말은 배운 다음부터 아빠를 마치 강아지 부르듯 사용한다. 잠시라도 내가 안보이면 “아빠는?” 하면서 집을 뒤지기 시작하고, 아빠를 찾지 못하면 서럽게 울기도 한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잠긴 목소리로 아빠를 찾고 어쩌다 바로 앞에 아빠가 보이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어쩌다 낮에 엄마와 통화하면 휴대폰을 뺏아 들고 알 수 없는 대화를 시도하고, 화상전화라도 할라치면 말은 한마디 안해도 아빠가 보인다고 자지러진다. 퇴근하고 집에 도착해서 문을 열면 전속력으로 달려와 맞아주고 안아준다. 뭔가를 먹게 되면 아빠것부터 챙기고 같이 놀자고 시종일관 “아빠 앉아봐”를 연발한다. 앉아있으면 다리 위에 와서 앉고, 식탁 옆자리에 있다가도 넘어와서 앉고, 누워 있으면 등에 올라타고 배에 올라타고 기저귀 찬 엉덩이로 얼굴위에 올라와 앉는다. 양치질을 할 때는 “아빠 이거봐” “엄마 이거봐” “언니 이거봐”하며 쩌렁쩌렁하게 자랑을 해 댄다.

아이에게는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는다.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다보니 아주 사소한 성취 조차도 큰 기쁨이다. 밥을 잘 먹어도, 새로운 말을 해도, 끄덕끄덕만 할 수 있어도, 웃기만 해도 집안에 웃음꽃이 핀다. 세상에 이렇게 공평한 축복이 있을까. 아이도 칭찬을 받으면 신이 나서 자꾸 그 행동을 반복한다. 하지만 칭찬보다도 할 수 있음을 깨닫는 것 만큼 신나지는 않을 것이다. 매일매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약간씩 성장하고 약간씩 형님이 되어간다. 매일 매일이 고단한 육아라도 아이는 어느덧 더이상 지난 주 처럼은 놀지 않게 되고 부모는 새로운 문제로 고민하게 된다.

굳이 알면서도 글을 남기고 싶은 이유는, 모든 작은 기억들이 너무 사소해서 시간이 지나면 오래 된 영화처럼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기억해내고 싶다. 아이의 머리냄새, 세탁물의 냄새, 차고 있는 기저귀의 냄새, 높고 얇은 톤의 조심성 없는 목소리, 꼬리 흔드는 강아지 같은 몸사위, 도약하는 발구름 소리, 작지만 거친 호흡, 빨리 뛰는 심장, 갑자기 품을 파고드는 자그마한 몸놀림, 코 앞에서 내 얼굴을 쳐다보는 또다른 나, 내 얼굴을 더듬는 고사리같은 손, 울다가도 안아주면 폭 안겨서 금방 그치는 모습. 하나 하나가 다시 오지 않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기에 너무나 소중하고 보물같은 기적.

--

--

Beejei
Beejei

Written by Beejei

Writing for the better world. Let's give us time to recover, time to understand.

No responses y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