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을 열 때마다 느끼지만, 글을 쓸 시간과 공간이 있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다. 나의 내면에 온전히 집중하고 나의 이야기를 한 칸씩 채워나간다는 것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 중의 하나일 것이다. 동시에 거의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이기 때문에 좀 더 마음 편하게 요모조모 나의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 있어서 좋다.
2016년, 나는 어떤 훌륭한 회사의 매니저가 되었다. 이 팀은 무엇인가를 개발도 해야 하지만, 회사 내에서 팀의 입지를 굳히는 것이 암묵적인 의무이기도 했다. 내 일에만 집중하고 싶은 내게 그런 정해지지 않은, 일 외적의 이야기로 무엇인가를 만들어야 하는 일은 너무 애매모호하고 어려웠지만, 꽤나 열심히는 해 왔다. 한 4 년 간은.
나는 회사를 좋아한다. 특히 이 회사의 사무실은 더 바랄 게 없을 정도로 쾌적하다. 멋진 전망은 덤이다. 당시 나의 아이들은 아직은 어렸고, 더 늦기 전에 나는 일에 최대한 많은 에너지를 투입하고 싶었다. 집이 멀 때는 운전해서 출퇴근하고, 나중에는 회사 근처의 좀 불편한 집으로 이사하여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살았다. 잠이 일찍 깬 시간, 밤 늦은 시간, 틈이 보이면 되도록 회사 사무실에 있었다. 이 시간에는 나를 방해하는 어떤 요소도 없었고, 내가 방해할까 신경쓸 사람도 없었다. 이따금 카펫 청소를 하시는 분들과 마주쳐서 이동하기는 했지만, 나의 모든 정신을 집중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다.
매니저로서의 일은 원래는 팀원과 나의 피어 매니저, 윗선 매니저와의 협업이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나는 이 곳에서 매니저를 하면서부터 논의되지 않는 무수히 많은 구멍들과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일들이 가장 눈에 밟혔고, 함께 논의하면서 챙기는 일들에 사람들이 배정된다면 그 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때로는 가용한 인프라적인 옵션이기도 했고, 때로는 아무도 만들지 않은 라이브러리이기도 했고, 때로는 누군가의 연봉이나 개인사적 고민이기도 했다. 누구나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누구도 손을 못 대고 있는 일을 불현듯 시작하기도 했다. 어쩌면 이런 판단들이 지금까지의 나를 만들기도 한 것 같지만, 한편으로 무엇인가를 놓친 이유이기도 한 것 같았다.
개발자가 80명 정도 있는 개발팀은 어마어마한 레거시 프로젝트들을 가지고 있다.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만들어진 코드는 언어도 다양하고, OS도 꽤 나 구버전을 유지하고 있었다. 컨테이너로 만들어져라도 있으면 다행인데, 아무도 손대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오늘부터 동작하지 않는 코드도 왕왕 있었다. 매니저면서 동시에 특정 토픽에 대한 오너가 되어 계획은 무성해지는데, 현실에서는 실행이 번번이 좌절되거나 가로막히게 되었다. HR에서 empowerment를 그렇게 강조하는데, 강조하는 덕목은 그 조직에서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점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매니지먼트들은 다른 생각들만 하게 되었고, 나의 토픽들은 일은 있으나 팀에서 그다지 잘 하고싶지는 않은 모양새로 굳어져 갔다.
매니저로써 써 볼 수 있는 옵션은 다 써 본 것 같았다. 처음에는 팀원을 뺏길 수 없어서 고집도 부려 보고, 대책없이 일이 가중되어 싸우기도 해 보고, 사람을 채용할 수 있게 각종 서류를 작성해 보기도 하고, 나중에는 한국에서는 적용해 본 적이 없는 형태로 임시직 채용을 허가받아 진행해 보기도 했다. 그럴듯해 보이는 조직이 신경쓰는 업무와 그렇지 않은 업무가 눈에 너무 잘 들어와서 허탈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 돈이면! 이 사람들이면! 훨씬 더 나은 일을 해 볼 수 있을텐데!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도 시스템에 적응하여 태만이 물들어가는 것 같았다. 공교롭게도 COVID-19로 사실상 같은 공간에서 만나서 함께 일하는 동료라는 개념이 2021년 이후로는 희미해져 갔다. 다들 잘 정의된 일을,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 알아서 진행하기를 원했고, 그것은 더이상 내가 팀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내가 이 회사의 수만개의 축 가운데 꽤나 중요한 축을 잘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회사에서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보니, 나는 매니저라고 하기에는 권한이 너무 없었고, 나의 매니저들은 나의 방향성에 전혀 동조해주지 않았다. 나는 매니저라기보다 마치 초등학교의 줄반장 정도 되는 사람 같았다. 나의 업무영역이 있고 내가 운영할 수 있는 예산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일정 분량의 일에 책임만 지는 사람. 대략 작업반장 정도 된다고 볼 수 있을까. 독일인이라고 합리적인 것도 아니고, 동료라도 동등한 것도 아니고, 일을 많이 한다고 인정받는 것도 아닌 그냥 이도저도 아닌 현실을 인식하고, 대략 1년 정도의 기간을 두고 내가 맡았던 업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직을 매우매우 희망했었는데 45세의 이직은, 메리트를 유지하기가 너무 어려운 것 같다. 거기에 이미 주변 지역에 생활 터전을 잡은 가족들을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게 되었다.
그래도 없는 기회들을 쥐어짜서 해보려고 했던 최근의 2년간의 경험은 너무나도 의미있었다. 말로 표현조차 못하는 개발자들의 디자인 개념을 채워주는 분을 영입하고, 그냥 일상적인 영어나 문서가 아닌, 날카롭고 예리한 의미를 알려주는 테크니컬 라이터도 모실 수 있었고, 최신 기술의 문서와 각종 책을 섭렵하는 분을 모셔와 파란을 일으켜 볼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나의 현재 상황과 해야 하는 일에 공감하고 아주 가까이에서 1년 반정도를 공유하고, 공감하고, 언쟁하고, 성장하며 케케묵은 숙제들을 다 정리해 준 분을 만날 수 있어서, 덕분에 나도 두 배 이상 압축 성장할 수 있었다. 이 분들은 이제는 다들 다른 곳에서 활약하고 계시지만, 나의 매니저 커리어에서 가장 의미있는 시기를 만들어 주신 분들이다.
이제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단신 개발자로 돌아간다. 함께 고민하고 싶어 만들어둔 수십개의 슬랙 채널들, 그간 발표하며 공유했던 수백 가지의 아이디어들과 문서들, 조직이 원하는 대로 창고 깊숙이 다시 고이 접어 놓고 언제일지 어떻게 올지 알 수 없는 다음 기회를 기다리며 훌륭한 회사에서의 우여곡절 많은 매니저 생활을 졸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