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본 어떤 디즈니 애니메이션보다 멋짐
오큘러스 퀘스트 — 지금은 Meta Quest — 를 구입하고 어언 2년 정도 지난 것 같다. 유명한 몇몇 게임도 해 보고, Youtube로 8K 360 drone footage도 여러 개 보곤 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한 상품성에 이용 빈도가 많이 떨어진 터였다. 그간의 경험으로 비추어 느낀 한계점은 다음과 같다.
- 조악한 영상 퀄리티: 촬영한 컨텐츠는 화소 수 가 부족한 탓에, 3D VR영상들은 공간에 비해 부족한 오브젝트의 미려함 탓에 마치 2000년대 초반의 영상을 감상하거나 3D Accelerator 없이 3D 게임을 하는 기분이다
- 움직였을 때의 어색한 반응: 이것은 주로 영상을 볼 때의 이야기인데, 내가 주변으로 몇 걸음 걷거나 머리를 움직일 때, 영상 전체가 나의 위치로 따라온다. 그래서 내가 영상을 촬영한 현지에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없다.
- 몰입감 부족: 무엇을 하든 내가 투영된 화면을 보는 느낌이지, 내가 그곳의 일부가 된 기분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마치 홀로그램을 헬멧 안에서 보고 있는 기분이다.
정도의 이유로 오큘러스를 이용하기를 멈추었었다. 그러다가 최근 할인코드 알림이 떠서, 평이 괜찮은 가상 여행 앱을 하나 구입하고 즐겨보다가, 그대로 끄기 아쉬워서 퀘스트 TV의 동영상을 몇 개 감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글을 쓰게 이끌은 Namoo (by Baobab Studios)를 감상하게 되었다.
동영상은 아기의 탄생으로 시작한다. 길지 않은 영상이라 흔한 VR 애니메이션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일종의 Hand-drawing object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같았다. 영상이 단순하게 그려져서 퀄리티가 낮아보이지 않아 기분 좋게 감상할 수 있었다. 약간 차이가 있다면, 일반적인 VR 애니메이션은 보통 나를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공간에 방치하는데, 이 애니메이션은 일련의 사건이 자라나는 나무 주변에서 일어나고, 내가 그 주위를 서성이며 관찰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따라서 꽤나 입체적으로 등장인물의 움직임과 표정을 살필 수 있었다.
캐릭터는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색상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등장하는 사물들은 마치 주인공의 추억이 담겨 있는 듯해 보였다.
그 안에서 나는 주인공의 모든 행동을 관찰하고, 기분을 마음껏 상상해보았다.
이런 시청자에게 자유를 허용한 부분이 첫번째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두번째 매력은 바로 이것.
애니메이션을 통틀어 그 어떤 해석이 필요한 글씨나 말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나는 주인공이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일구어 왔는지, 나무가 어떤 의미인지가 대략 짐작이 간다. 이러한 수 백 번의 언어를 퉁 칠 수 있는 전달력이 두 번째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세 번째 매력은 몰입도. 주인공들이 하는 경험이 나에게도 그대로 전해진다. 주인공들을 감싸던 나비가 나에게 날아오고
주인공들이 보고 있는 별들을 나도 감상하며
주인공이 맞고 있는 비가 내 주위에도 내린다
이 애니메이션을 보기 시작하고 1분 만에 나는 완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과 장면 연출에 매료되며 주인공이 거치고 있는 인생의 한 순간, 순간들을 나의 추억에 덧대어 기분 좋게 감정이 고조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온 좌절과 인생의 심연
회복
성공과 노환, 무너짐, 허무, 추억
내 인생과도 닮아보이고, 내가 상상하는 노년과도 닮아보여서일까. 나는 이 애니메이션의 마지막까지 한 하나의 흠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어떤 말이 필요할까. 단 10분이면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사람이 어떤 일이 생길 수 있고, 어떤 모습일 때 어떻게 보이는지.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 것 같은지. 어지간한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수많은 메세지가 단 10분짜리 애니메이션에 담겨 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몰입형 VR기기의 컨텐츠는 어때야 하는가. 감히 이 작품의 제작자 Erick Oh님의 천재적인 연출에 경의를 표하며 가볍기 그지 없는 글을 마친다.
당분간 이 경험이 그리워서 오큘러스 퀘스트를 자주 이용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