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간관계는 두 파트로 나뉜다. 사람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기 전과 후"
이건 철학이나 이론같은 대단한 것이 아닌, 그냥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렸을 때 부터 나는 가족이든 친구든 혹은 사회에서 만나는 어떤 사람이든 간에 나에게 잘 해 주는 사람에게 잘 해 주려고 하는, 다소 일차원적인 관계를 꽤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 이 방식은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 꽤나 노력이 따른다. 내가 좋은 피드백을 주어야 할 사람을 기록하고 기억해 두어야 하고, 멀어져야 하는 사람 역시 기록하고 기억해 두어야 한다. 일종의 관계에 노력하는 지수, 혹은 관계에서 선을 넘는 지수를 주관적으로 판단해서 이후에 어떤 관계를 유지할지를 정하는 방식인데, 일종의 공평성을 위해 나 역시도 상대에게 큰 피해를 입히거나 무례를 범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스스로를 단속해야 한다.
얼핏 보면 너무 당연할 것 같은 방식이고, 보편적일 것 같기는 하지만, 좀 더 나에게 더 잘 맞는 부분을 찾는다면, 이런 평가에 감정을 꽤나 잘 배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내게 개인적으로 못된 말을 하거나 놀리거나 피해를 준 적이 있더라도, 보편적인 관점에서 그 사람이 이득이 될 만한 사람이라면 그래도 좋은 평가를 유지한다는 점이다. 모르겠다. 이것 역시도 너무 주관적인 평가일 수도 있겠다.
이 방식의 장점은 나름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수월하다 보니, 적당히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는 편하다. 하지만 단점 역시 명확하다. 한번 실망감이 생기면 다시는 관계를 이어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간관계는 생각보다 나 개인에게 보탬이 되는 경우가 없고, 스스로 의미 부여를 하지 않으면 발전시켜 나가는 데 노력조차 들이기가 어렵다. 그런데 나 스스로가 취미나 기호가 뚜렷한 것이 얼마 없고 대부분의 시간을 개발이나 뉴스를 탐독하는 데 쓰기를 좋아하다 보니 일부러 타인과 흥미의 교집합을 만드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태도는 20대 중반 정도부터 약간씩 바뀌기 시작했다. 주요 이유는 나 스스로가 결례를 범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였다. 요즘 말로 이불킥 모먼트라고 볼 수 있는데, 주로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는 가까운 사이에서, 혹은 가까워지려고 했던 친한 사이에서 일어났다. 어쩌면 나의 생각이 편향되거나 마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보던 익숙한 문체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나온 말일 수도 있고, 어쩌면 나의 어휘가 부족해서 어울리지 않는 표현을 해서일수도 있다. 너무 부끄러워서 차마 적기조차 어렵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스스로의 행동을 꽤나 많이 단속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고, 남들이 신뢰할 만한 말투를 유지하가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맘때 즈음 누구나 할 만한 노력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반면교사라고나 할까, 누군가가 미숙한 행동을 하거나 심각하게 무책임한 말을 하면, 당장은 기분이 틀어지고 미간이 찡그려지지만, 적어도 한 번 정도는 ‘그맘때의 나는 어땠나'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 이 사람과의 관계가 물리적으로 몇 년 이상 지났을 때, 아직 내 인생의 한편에 있을까 없을까를 곱씹어보게 된다. 그런 부분이 아이를 키우면서 좀 더 발달하게 되었는데, 내가 이 아이를 키우고 있고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의식적인 인식이 있기도 하고, 내가 이 아이에게 절대적인 이해심을 발휘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기도 하다. 좋든 싫든 이 아이는 이 행동을 하다가 어느 시점에서는 좀 달라질 것이고, 그 때 쯤엔 나도 더이상 화낼 필요가 없게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또 하나의 이유는 — 주로 사회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경우인데 — 상대방이 애초에 경험이 부족해서 공감이 어려운 경우이다. 내가 해 본 일을 못 해본 경우, 우리 회사에 대한 경험이 없는 경우, 실패해 본 경험이 없는 경우, 외국에서 살면서 불편해 본 경험이 없는 경우 등등. 그런 경우는 성장이라고 하기는 좀 뭣하지만 그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해 볼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서야, 의미있는 공감을 할 수가 없다. 그런 경우는 속상하지만 관계가 완전히 망가지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만에 하나, 혹시라도 있을 지 모르는, 그가 그때 당시의 나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을 상상하며 나 혼자 미래를 기약해 보기도 한다.
내 연락처에는 2000여 명 정도가 기록되어 있고, 그 중 1800명 정도가 차단되어 있다. 처음 만난 관계보다도 못한 관계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혹은 과거의 그 애매한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어 이어가기에는 내가 너무 피곤한 관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좀 덤덤하게 생각하고 인정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적당한 타이밍이 되면 차단 해제는 클릭 한 번이면 된다는 걸.